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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광복절 79주년과 건국절 76주년을 기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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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은 우리 대한민국이 일제 치하의 억압과 설움으로부터 해방을 하게 됨으로 8.15 광복절 79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고, 또한 우리 대한민국이 건국이 되었던 날인 1948년 8월 15일을 76번째로 기념하는 날이었다. 우리 나라가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이한 이후, 우리 대한민국은 해마다 이 날을 기념하여 독립의 가치를 기억하면서 경축해 왔었는데, 올해는 이 경축식을 두 군데에서 열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의 꼴이 너무나도 추하고, 너무나 씁쓸하였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해마다 정부 주관으로 광복절 경축식을 가져 오고 있었는데 올해는 정부가 주관하는 경축식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었었고, 광복회장인 이종찬 씨가 주관하는 경축식은 백범 김구 선생의 기념관에서 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 주관 경축식에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무위원들과 정부 인사들과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하였었고, 광복회에서 주관하는 경축식에는 민주당 의원들과 조국신당의원들이 대거 참석하였던 것을 기억할 수가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처음으로 두 동강이 난 채로 경축식이 두 군데에서 열렸는가에 대해서 알아보니, 독림기념관장 후보로 광복회장 이종찬 씨가 추천한 사람이 독림기념관장이 되지 아니하고, 김형석 씨가 독림기념관장으로 임명이 되었다고 해서, 거기에 불만을 품고 정부에 대항하여서 올해 처음으로 정부가 주관하는 경축식에 이종찬 씨가 참여 하지 아니하고, 광복회 주관으로 따로 모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내용을 살펴 보면서 너무나도 원통하고, 너무나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 대한민국이 해방이 된지 겨우 79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직도 일제 치하로부터 벗어 나지 못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백성들이36년 동안 고통을 당하며, 억압을 당하고, 치욕을 당하면서도 백성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본에 항거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감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필자는 이번 경축식의 되어 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위정자들과 정치가들과 모든 국민들이 다시 한번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 앞에서 통회 자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천 1백만명의 남한 땅의 백성들이 서로 분열되어서 좌파와 우파로 분열이 되고, 정부를 지지하는 측과 정부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 져서 서로 으르렁거리며, 서로 싸우고, 서로 분열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동안에 정부에서 의례히 주관해 오던 경축식이기에 광복회에서도 그 경축식에 참석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 나라에 대통령을 선출하였으면 그 대통령이 좀 부족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을 덮어 주고, 또한 대통령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대통령에게 조언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자기가 추천한 사람을 그 자리에 임명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대통령을 친일파로 몰아 간다든지 매국노로 몰고 가는 것은 너무나도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남한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두가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나라를 사랑하며, 나라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해서 함차게 달려 나갈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그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시고, 통일의 축복도 주실 줄로 믿는다. 필자는 새벽마다 기도할 때에 저 북한 땅에 공산치하 김정은 독재 체제에서 고통을 당하며 신음하고 있는 우리 동족들인 2천 6백만 백성들이 속한 시일 내에 독제체제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으로 남북이 통일 되어지고 하나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제발 이후로부터는 해방을 맞은 우리 민족과 백성들이 두 쪽으로 나눠지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일제 강점기 36년 기간 동안 우리 백성들의 강제 동원의 피해는 징용, 징병, 군위안부, 원자폭탄 피폭 등 크게 4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고 한다. 징용 피해자는 730여만명으로 강제 동원 피해자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단 한반도 내에서 징용된 650여만 명은 중복 계산된 경우가 많아서 실제 피해자는 200만—3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징병 피해자는 대략 23만여 명의 군인들과 15만 여명의 군속들 등 총 36만 5000여 명으로 추한된다고 한다. 군인들은 육군이 18만 6000여 명, 해군이 2만 2000여 명이며, 지원병이라는 미명 아래 차출된 육군특별지원병들도 2만 여 명이 넘었었다고 한다. 


피해자 수를 가장 파악하기 곤란한 군위안부는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본격적으로 동원이 되었었다고 한다. 피해자의 80%는 취업 사기나 인신매매 형태로 데려 갔지만, 태평양 전쟁 말기가 되면서 헌병이나 경찰 등이 마구잡이로 납치해서 강제로 끌고 갔다는 것이다. 7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원자폭탄 피해자는 대부분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군함 등 군수품 제조 공장이 밀집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배치되어서 강제로 일을 하다가 원폭의 피해를 보았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라고 하면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를 말하는데 정확하게 기간을 말한다면 34년 11개월 17일인 것이다. 만일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제국을 아직까지도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시켜주지 아니하였더라면, 우리 나라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하게도 아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1945년 8월 초순 경에 미국에서 일본 땅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으로 인하여서 일본의 수장인 천황이 연합군에게 손을 들고 항복하게 됨으로 우리 대한제국이 8월 15일에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된 이후에 약 3년 동안 준비하여서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설립 되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1919년에 설립되었던 임시정부는 정부의 요건인 영토 확보와 주권적 지배권, 법률 제정 및 집행이 가능한 물리적 강제력 등을 갖추지 못하였었다. 또한 임시 정부는 미래의 주권을 행사할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요건(제한된 영역의 실효적 통치, 국제 사회의 승인 등)을 갖추지 못하였으며, 정확한 임시 정부의 창립일에 대해서도 관점에 따라서 날짜가 분분한 것이다. 


또한 1923년 국민대표대회의 실패로 인하여 사실상 일개 독립운동 단체로 전락하여서 국가 차원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해방 이후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는 1948년 7월 새나라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였으며,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임시 정부”를 정신적으로 계승한 의미라고 명시되어서 나타난다고 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1919년의 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 정부”인 것이다. 만약에 1919년에 우리나라가 건국이 되었다면, 당시의 정부를 “임시 정부”라고 부르는 것이 모순인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정부를 “임시 정부”리고 부른 것은 다름 아닌 임시정부의 인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1919년에 건국되었다고 하는 견해는 임시 정부 인사들 본인들에 의해서도 지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1941년 11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발표한 새 민주국가의 건설을 위한 강령인 “대한민국 건국 강령”에도 국가 건설과정은 “독립 선포, 정부 수립, 국토 수복, 건국”이라는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임시정부가 건국을 위한 과정임을 나타낸다고 1948년 8월 15일 건국론 옹호론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니까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던 1919년 4월 11일부터 국가를 세우기 위한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다가 비로소 그로부터 29년의 과정들과 세월이 지난 후인 1948년 8월 15일에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설립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1919년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국제사회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하다가 1948년 8월 15일에 새로운 “대한민국” 국가가 탄생하였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 이후에, 다른 나라와 수교를 함으로써 국가 승인을 받았었고, 제3차 유엔 총회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가 세워진지 76년의 세월이 흘렀고,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지 79년의 세월이 흐른 이 시점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위시하여서 모든 위정자들과 정부 관료들과 모든 국민들이 한 마음이 되어서 우리 나라가 1919년도에 임시 정부가 수립되어서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서 투쟁하며 싸우다가, 비로소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었고, 임시 정부 수립 이후 29년만인 1948년 8월 15일에 정식으로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제발 이후로는 건국절을 가지고 더 이상 논란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해마다 8.15 경축식을 맞이할 때마다 정부에서 주관하는 경축식에 함께 공동으로 참여하는 성숙한 국민들이 모두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그래야만이 통일도 바라볼 수가 있을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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