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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나그네 인생을 살아 갈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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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본문 베드로전서 2장 11절-1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나그네 인생을 살아 갈 때에”라는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여기 1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로 시작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나그네”라는 말은 “일시적으로 거주하여서 법적인 권리를 가지지 못한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거류민”이란 말은 “행인”이라고 구 성경에서는 번역하고 있는데, “거쳐 가는 길손으로서 정착자가 아닌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고생을 하다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가 이 지구촌에서 살아가고 있지마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새 찬송가 479장에 보면, “괴로운 인생 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이 아주 없네, 걱정과 근심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란 가사가 바로 우리의 고향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 나라임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나그네 인생을 살아 갈 때에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 가야만 할 것인가?


 첫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살아 갈 때에 우리의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본문 1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육체”라는 말은 단순한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한 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육체로부터 비롯되는 “정욕”이란 것은 우리 “영혼의 삶”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인간의 정욕”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부여 하셔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영적인 삶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육체”와 “영혼”이란 것은 우리 인간의 몸 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마는 서로 양립될 수가 없는 것으로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신분을 소유하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에 합당한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악한 본능과 대적하여서 싸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육체의 정욕대로 살게 되면 사람이 게을러 지게 되고, 성적으로 타락하게 되고, 남을 욕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도적질하게 되고, 마약에 빠지게 되고, 술 취하게 되고, 그래서 남을 구타하기도 하고, 남의 일을 훼방하게 되는 매우 타락한 인생을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9절 이하에 보면,  정욕대로 살아 가는 타락한 사람들의 공통점들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육신의 정욕대로 살게 되면 위에 나온 21가지의 죄악들을 범하면서 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보았음이라.” 고린도전서 9:27절에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깨어 있으면서 바울과 같은 정신으로 우리가 우리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일을 계속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정욕을 제어하며,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오직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부단히 힘쓰며,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나그네 인생을 살아 갈 때에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13절과 14절에 보면,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여기서 “제도”라는 말은 본래 “토대”나 “창조물”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제정한 법과 질서에 대해서 “크세티아”, 즉 “제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세운 제도들 조차도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인 윤리 생활을 해 나갈 때에 정해진 사회 제도 내에서 충실하게, 성실하게 이행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세운 제도에 우리가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그것에는 분명하게 “주를 위하여”(for the Lord’s sake)란 기준이 붙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인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우리 주님을 위하여” 하는 것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본문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시는 것이기에 징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또는 인간적인 동기에 의해서 행동해서는 안 됨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을 위하여” 제도에 순종하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주일에도 회사에 나와서 반드시 일을 해야만 한다”고 하면서 주일임에도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는 것을 강요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제도에 반대하면서 “주님을 위하여”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만 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10: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로마서 14: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가 인간들이 세운 제도에 순종하면서 살아 가되, 언제나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셋째로, 나그네 인생을 살아 갈 때에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행하시기를 바란다. 본문 16절을 보면,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자유를 방종이 아닌, 합법적인 권위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으로 나타내야만 할 것이다. 여기 본문에서 “악”이란 바로 “모든 종류의 악덕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자유를 오용하여서 악덕을 행하는 구실을 삼는다거나, 혹은 방종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도리어 우리는 그 자유를 통해서 더욱 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보면,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소유하고 있는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와 사단과 그리고 이기적인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자유”인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나그네로 이 땅을 살아 갈 때에 뭇 사람들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본문 17절에 보면,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왕을 존대하라.” 여기 “공경한다”는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에 대해서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형제를 사랑하며” 이것은 명령형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자들을 지속적으로 사랑해야 함을 시사하는 말인 것이다. 그 다음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왕을 존대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하고, 또한 왕을 존중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왕을 섬기는 자세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왕이나 대통령을 순복하고 존중한다 할지라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멸한 수가 없는 그들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왕에 대한 태도는 상충될 수가 없으며, 왕이나 대통령을 공경하는 것은 형제 사랑이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그네 인생을 살아 갈 때에” 어떻게 살아 가야만 할 것인가? 바로 위에서 지적하고 있는 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이 4가지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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