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노오란 우체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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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우체통’ 앵콜연재를 하면서……
프랑스 파리의 동포신문 ‘파리지성’ 발행인이자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초대회장(2009)을 지낸 정락석발행인은 본보 발행인과 고교동창친구로 프랑스에서 퐁데자르 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 북한산 송추계곡에 갤러리까페를 지어 운영하고 있다.
노오란 우체통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점점 빨라지는 속도와의 전쟁을 치르며 무르익기도 전에 떨어져 버리는 땡감처럼 진득한 기다림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 누군가에게는 애틋한 몽환이기도 했었고, 어쩌면 시 그 자체였던 우체통은 현대문명에 각축장에서 점점 소외되어 이제는 그 흔적만을 겨우 남기고 있을 뿐이다.
손글씨로 써서 보낸 가슴 깊은 사연을 담아 책으로 출판된 내용을 본보에 연재하고자한다. [코리아월드 편집국]
경계에 선 사람
권 형,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퐁 데자르 갤러리 카페>에 노오란 우체통을 세웠습니다.
형은 밤 새워 쓴 편지를 곱게 봉하고 새벽이슬을 밟으며 거리를 가로질러 우체통에 넣어 본 기억이 있으시지요. 손끝에서 툭하고 떨어지던 그 아슬아슬한 그리움과 기대로 벅찼던 순간들이 있으신지요.
노오란 우체통을 세워 놓고 보니 어느 순간 파리의 어느 길모퉁이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절망과 슬픔속에서도 언제나 친구처럼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이어주던 우체통처럼 저 또한 사람들을 서로 소통하게 하는 다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평생 제가 해 온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예술 그리고 파리와 서울을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파리 센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 <퐁 데자르: Pont des Arts). 예술의 가교, 정말 프랑스다운 이름 아닌가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작은 골목들, 모퉁이 하나에도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파리를 깊이 사랑했지만 돌이켜보면 가슴 한구석엔 항상 서울을 품고 있었습니다.
20년 넘게 파리의 한인 동포신문인<파리지성>을 발행하면서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회장을 2년여간 맡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겁니다.
파리 한식당 불어판 가이드 북을 만들고 [푸른사막]이라는 책을 통해 한식으로 세계를 개척하는 사람들을 널리 알리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한국과 프랑스, 나아가서 우리와 전 세계를 연결하고자 하는 소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파리에서는 서울을 생각하고, 서울에서는 파리를 생각하니 혹자는 어느 한곳에 확실하게 정착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는 아닌게 아니라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온 세상을 헤매 다니며 사는지, 어느 한 곳에도 머무르지 못하는 유목민 같은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권 형, 혹시 ‘경계에 선 사람’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서강대 최진석 교수가 이승과 저승 사이를 흐르는 스틱스 강의 이야기를 통해 경계에 선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더군요.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테티스 여신과 펠레우스라는 인간의 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를 기억하실 겁니다. 반쪽은 신이요, 반쪽은 인간인 그는 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영생의 삶을 보장 받을 수 없었습니다. 여신 테티스는 신인 자신의 아들이 결국은 죽는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제우스를 찾아가 아들의 영생을 호소합니다. 그때 제우스가 알려준 방법이 바로 스틱스 강에 몸을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기의 발목을 잡고 강물에 담그는 바람에 아킬레스건이라는 약점이 생겨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요. 왜 스틱스 강에 물을 담그면 불사의 몸이 되는지에 대한 최 교수의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은 매우 강하다는 것을 은유한다는 것입니다. 경계에 서 있을 때의 불안함이 인간을 고도로 예민하게 유지시키며 그것이 자유를 주고 통찰력의 바탕이 된다는 것입니다.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어느 한쪽에 속해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센 강의 다리 퐁 데자르처럼, 송추의 <퐁 데자르 갤러리>에 놓인 노란 우체통처럼,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지요.
바로 그거였습니다, 권 형<파리지성>을 통해 우리 동포들이 눈과 귀가 되고 싶었던 것, 불문학을 공부했으면서도 뜬금없이 갤러리를 열어 한국의 화가들을 프랑스에 소개하려 애썼던 것, 그리고 이 곳 송추의 낮은 산자락에 노오란 우체통을 놓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어느 한쪽에 안주하지 않고 온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노오란 우체통이 마치 나 자신처럼 정겹고 따스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결국은 이 우체통에 편지를 모으고 그것들을 혼자 누리기 아까워 책으로 만들 생각을 했으니,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인지요.
권 형, 얼마 전, 시내에 나갔다가 지하도에서 내게 음식을 청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곧 겨울이 다가오므로 만만치 않게 추울 터였습니다. 종이 박스를 바닥에 깔고 신문지 몇 겹을 덮었는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신문지 광고란에 새로 지을 아파트 분양 광고가 한창이었지요.
노숙일이라고 해서 누가 그의 삶을 실패로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문득 남들 눈에 좋아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 삶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고 있다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남들의 기대와 시선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면, 어쩌면 그게 더 추락한 삶이 아닐는지요.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정신을 오롯이 지켜나가는 것이 언제나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실패는 언제든 우리 삶의 곳곳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것만을 원하지만 지나고 보면 고난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깨닫게 되지요. 겉으로는 실패처럼 보여도 정신의 오롯함이 있다면 우리는 제대로 살아있는 겁니다 시간을 죽이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경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2008년 파리에 퐁 데자르 개관전부터 여러 번에 걸친 ‘그림이 있어 행복한 파리전’과 [K 파리지앙] 출판까지 큰 힘이 되어주신 권 형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벌써 날이 꽤 추워졌습니다. 언제나 따뜻하고 힘이 되는 권 형과의 대화가 몹씨 그립습니다. 퐁 데자르 갤러리엔 언제 들르실 건지요? 맛있는 커피 마련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2018년 11월 정 락 석올림.
*노오란 우체통 정락석작가 프로필은 현재 동포신문<파리지성>발행인, 프랑스에서 꾸땅스 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7년에는 프랑스 한인역사서이자 예술서 <K 파리지앙>을 출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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