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노오란 우체통(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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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 정 형(3)
남달리 부지런한 정 형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 많은 일들을 기획하고 추진할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마도 지난 30여 년 동안 프랑스에서 직접 부딪치며 몸소 체득한 다양한 경험과 감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30여 년 전, 파리 유학 초기 시절 프랑스 서부 아틀란티크 게랑드 염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 정 형의 생각과 몸을 단단하게 단련시켰을 것입니다. 외롭고 고독했던 시절, 태양이 작열하는 대서양의 해변가 염전에서 소금을 긁는 정 형에겐 오로지 태양과 바람만이 친구였겠지요. 하지만 아마도 정형은, 짜디 짠 소금은 맛을 내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자양분이며, 죄로 물든 이 세상을 정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정착한 한인의 역사가 40여 년이나 흘렀음에도 변변한 역사적기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정 형은, 역사 기록의 절실함을 깨닫고 [K-파리지앙]이라는 책을 집필했지요. 저도 책 표지 디자인과 내지에 들어갈 드로잉작품들을 그려 마침내 출간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정 형과 제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이겠지요.
‘세느강에는 슬픔이 고이지 않는다 흐르는 것은 모두 사랑이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창조’, ‘도전’, ‘변화;등 세 파트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프랑스를 무대로 활동했거나 현재 활동중인 주요 인사들의 이야기와 예술 작품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예술 작품을 통해 자유를 쫓는 아름다운 영혼들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엮은 역사서이자, 예술사를 기록한 매우 중요한 책으로 매우 큰 가치를 지녔지요.
이 책 ‘창조’편에는 ‘건반위의 구도자’ 백건우를 비롯해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 ‘세계3대 바이올린 콩쿠르를 석권한’ 강동석, ‘동서양의 문화를 한 폭으로 담은 거목’ 이응노, ‘한국 추상 미술의 거목’ 한묵,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예술가’ 이성자 등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 미술가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전’편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대사’ 모철민, ‘아름다운 시대의 풍운아’ 강귀희, ‘꿈에도 소원은 파리 한글학교’ 이철종, ‘수송기를 타고 파리로 날아온 요리사’ 조만기, ‘K 파리지앙, 현대기아차’ 임덕정,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이 곧 국력’ 박병률, ‘동포 사회의 등불이 되기를’ 정락석, ‘프랑스 안의 한국 문화’ 이진명 등의 생생한 목소리들이 담겨 있습니다.
한불 130년의 역사를 기술한 ‘변화’편에는 1886년 한불 우호 통상 조약체결, 프랑스 최초의 한국인 홍종우, 일제 강점기의 재불 한인들, 해방 이후 재불 한인 사회, 한국인 입양인들 그리고 펠르랭 전 장관과 플라세 정무장관, 한불의 정상의 공식 방문, 서울정원과 서울광장, 프랑스의 한류 열풍, [직지심체요절]에 얽힌 사연 등 파리 한인들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K-파리지앙]은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재불 한인들의 초창기 역사가 잊히기 전에, 그리고 현재의 살아있는 뜨거운 역사의 현장이 식기 전에 누군가는 그 이야기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자각에서 썼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 형은 “예술이 끊임없는 자기 변모에서 생명력을 얻듯이 재불 한인의 삶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며 “이 책이 잊혔던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고 프랑스에서 한국적으로 재창조된 우리의 정신적 유산을 조명하는 데 기여 하기를 바란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불 대사관이나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정 형이 개인이 사비를 털어 출간한 것에 마음 깊은 갈채를 보냈습니다.
파리 15구청 주관으로 매년 가을에 열리는 ‘재불 한인 축제 Festival Coreen’는 프랑스 파리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의 문화와 예술을 널리 알리고 한국의 전통 음식을 프랑스인들에게 알리는 매우 중요한 축제로 자리 매김했습니다.
정 형은 매년 이 축제에 적극 참여하고, 저 역시 드로잉 퍼포먼스 작가로 초대되어 100호 크기의 캔버스 위에 즉흥 드로잉을 펼쳐 보임으로써 한국인들의 예술성을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우분투, 정 형(3)
파리 동포 신문인 [파리지성] 발행인으로,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배포하는 패기 넘치는 파리지앙으로, 아틀란티크의 염전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벗 삼아 소금을 긁던 게랑드의 청년으로, 기독 실업인들의 모임인 CBMC 파리지회장과, 파리와 송추에 연 ‘퐁 데자르 갤러리’의 관장으로 정 형의 이름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꾸땅스 Coutances에 아트센터를 열어 프랑스와 한국 작가들이 숙식을 하며 작품 창작을 할 수 있는 레지던시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 형의 이런 예술을 위한 노력으로 앞으로 한국 작가들에게 큰 희망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처연히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써 내려온 이 편지를 이제 마칠까 합니다. 정 형에게 ‘우분트’란 별명이 붙은 까닭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째서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겠나?” -반투족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 라는 뜻인 이 말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강조해 널리 알려진 말이라지요,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 다른사람을 기꺼이 도우며 다름 사람의 생각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 ‘우분투’의 마음을 가진 정 형은 그래서 누구보다 굳센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파리의 우분투 정락석, 바로 당신 말입니다.
인생은 그리움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가을날 정 형이 더욱 그리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노르망디 꾸땅스의 퐁 데자르 아트센터 그리고 송추의 갤러리, 그 곳에서 인생의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8년 만추 재불화가 정 택 영 드림
*노오란 우체통 정락석작가 프로필은 현재 동포신문<파리지성>발행인, 프랑스에서 꾸땅스 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7년에는 프랑스 한인역사서이자 예술서 <K 파리지앙>을 출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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