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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준비되지 않은 한국군의 허를 찌른 6.25 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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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32]


1950년 6월에 들어 서면서 한국군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이미 떠돌던 전쟁 위기설에 대비, 그간 빨치산 토벌이나 국내 치안 유지 임무에 주력하던 한국군의 인사 체계 및 부대 배치를 전쟁을 치르기에 적합하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6월 10일에는 각급 주요 지휘관의 대대적인 인사 이동이 있었다. 사단장을 비롯한 유능한 지휘관들을 전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13일부터는 야전 부대도 전폭 개편, 전력 보강에 힘썼다.  


다 좋은데, 중차대한 군수뇌부 대이동 작업을 너무 짧은 시간에 그것도 한꺼번에 서두른 것이 문제였다. 새로 배치된 사단장이 주변 지형을 익히기도 전에, 부하 지휘관을 미처 파악 하기도 전에 북한이 쳐들어 왔기 때문에 새 사단장이 부대를 장악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부대는 임지에 도착하기도 전, 이동 중에 전쟁이 터저버린 것. 


찔린 헛점은 또 있었다. 그 동안 소문인 듯 진실인 듯 번지는 전쟁 위기설에 따라 북한에 대한 비상경계령이 발동과 해제를 반복하곤 해왔다.  6월 11일에 내려진 비상경계령은 23일에 해제된다. 김일성에게 그날은 남침 준비를 마치고 진격명령을 대기하도록 지시한 날이다. 


그러면서 전쟁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인지 3명의 특사를 남측에 보내며 메시지를 전한다.  유엔 감시단에게도 수교할 문서를 직접 전달해야 한다면서 서울로 가겠다 했다. 이들은 당연히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김일성은 즉각 석방 시키지 않으면 무력 행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티격태격하고 있는 상태인데도 남한은 곧바로 비상 경계령을 풀어 버린다. 


그래서 1/2 정도에 해당하는 군인들이 휴가를 떠난다.  나가서 목욕도 하고 이발도 하고 오라고 내보냈지만 또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오뉴월의 농촌은 일손이 달리는 농번기이기 때문에 가서 도우라는 뜻도 있었겠고. 마침 보릿고개이기도 하기 때문에 ‘앉아서 비싼 군량미 축내지 말고 어여 나가서 먹고 와’ 라는 서글픈 뜻도 있었겠다. 


뭐니뭐니 해도 제일 큰 구멍은 전날 밤 군수뇌부와 전국 주요 지휘관들이 밤늦게까지 술을 퍼마신 것. 6월 24일 저녁에 육군장교구락부 개관 축하 파티에 참석한 이들이 2차로 몰려간 곳은 국일관.  6월 25일 새벽까지 줄기차게 퍼 마셨다. 그런데 그날 국일관 술값을 계산한 자는 연합 신문 주필 정국은. 그는 휴전이 된 직후인 1954년 간첩혐의를 받고 군사재판에 넘겨진다. 재판을 받은지 6개월만에 사형이 집행된다. 그런데 수상한 것은 그에 대한 재판 기록이 모두 사라진 것.  왜 일까...  만약에 그가 간첩이 아니었다면 목숨 걸고 거금 쓴 멍청한 언론인이 되겠네.  


<전쟁은 기습적이고 신속해야 한다.  남조선과 미국이 정신 차릴 틈을 주지 말아야. 남한 자체의 강한 저항과 국제적 지원이 동원될 시간을 주지 말고 때를 잘 찾아 제 때 기습 공격하도록> 스탈린이 내린 이러한 지시대로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밀고 내려왔다. 동해안에서는 특수부대를 강릉 일대와 부산으로 상륙시키려 했고 오전 10시에는 북한의 정찰기가 김포와 여의도 공군기지를 샅샅이 정찰. 정오가 되다 4대의 야크 전투기가 서울 상공을 배회하며 용산역과 통신소 등지에 폭탄을 투하. 육해공 3면으로 쳐들어왔다. 


그 당시 육군 참모 총장은 채병덕 소장. 아직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기습 남침 보고를 받은 채소장은 새벽 5시에 전군에 비상령을 내리고 각 국장을 비상소집하라는 구두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신성모 국방장관을 관사로 찾아가 보고했다. 그 때가 아침 7시경. 보고 받은 신 국방장관은 경무대로 향했고 대통령에게 <개성이 함락되고 탱크를 앞세운 공산군이 춘천 근교에 도착했다>고 보고한 것이 오전 10시 30분경.  그러니까 새벽 4시에 시작된 북한의 남침 사실이 남한의 육군 참모 총장과 국방장관의 입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6 시간 30분!   


오전 11시 35분에 무초 미국대사가 이대통령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가 14시에 워싱턴의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내가 보기에 대통령 이승만은 상당히 긴장한 듯 했으나 태연한 태도를 잃지는 않았다. … 대통령은 나에게 한국은 더 많은 무기, 즉 소총과 탄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는 암호 장비가 없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했다. … 나는 대통령에게 미고문단이 38선의 모든 한국군 사단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군의 사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14시에 국무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대통령은 서울에 계엄령 선포를 고려하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평상시에 필요할 경우 모든 남녀와 어린아이들까지도 돌맹이나 몽둥이라도 들고 나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호소해 왔다고 말했다. … 대통령은 한국이 제2의 사라예보가 되는 것을 피해야 하고, 현재의 위기가 한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한번뿐인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


한편 무초 대사와 회담을 마친 이 대통령은 13시경에 주미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장면 대사에게 <저 놈들이 쳐들어왔어. 우리 국군은 용맹스럽게 싸우고 있지.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 격퇴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어떻게 하든 미국의 원조가 빨리 도착하도록 노력해야 해> 라고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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