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참 나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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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휘종황제와 황벽선사의 이야기입니다.
휘종황제가 양자강 기슭 소주에 있는 금산사로 가서 강에 떠있는 배들을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절 주지인 황벽선사에게 “저 많은 수의 배는 몇 척이나 되겠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황벽선사가 그 즉시로 “두 척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의미를 물으니, “하나는 명예를 위한 배요, 또 하나는 이익됨을 좇는 배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가끔, 서울의 출퇴근 시간에 몰려나오는 차들을 보며 앞의 이야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의 수를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두 대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 많은 차들이 몰려나오는 건 무엇을 구하기 위함일까? 명예와 권리와 재물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물론 높은 이상을 위하여 수고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추구하는 바에 따라서 그 사람의 관심이 달라집니다. 가령, 구두를 닦는 사람은 언제나 행인들의 신발에 관심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신발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이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는 명예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은 늘 자기의 업적을 남길 일이나 모임에 관심을 집중할 것입니다.
인생을 진지하고 실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내가 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이익을 좇아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데 전심전력하고 있지 않는지, 또는 명예를 갈구하여 남이 나를 알아주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가 참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우리 각자의 내밀한 곳에 감추어진 진아(진아)를 찾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전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본이며 생명체의 핵심인 참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세상 물욕에 더렵혀지고 물들여진 나는 ‘참 나’의 모습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것을 넘어선 자아라야 참 나의 모습이며, 진리 그 자체요, 하늘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러한 초자아의 탐구가 실현되고 그것에 가까워진다면 꽤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참 나의 발견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해탈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은 행복을 구한다는 것이 오히려 구하려는 마음에 얽매여 불행을 자초하는 수가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원망이 생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본래적 자아(자아)의 발견은 범속한 나로부터 벗어나는 최대의 첩경입니다.
우리는 자아의 완성에 대해 많을 말을 합니다. 과연 자아는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 그것은 본래적 자아를 만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참 나의 발견은 자아완성의 길이요, 설계도이기 때문입니다.
참 나를 가리는 먹구름은 왜 생겨나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헛된 것을 구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명예를 구하려 해도 구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남의 눈을 속이는 가면을 씁니다. 없어도 있는 체 허세를 부리며 참 나를 가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것은 밖에 있는 장식이 아니고 안에 감추어진 진실된 자신의 본질임을 알아야 합니다. 참 나를 발견해야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경산 장응철 종사,『작은 창에 달빛 가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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