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코리아월드 장편소설] 식구-제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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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41
아버지를 근 2년 만에 뵈었던 그 순간, 나는 하얗게 변색된 얼굴에 두툼하게 살이 붙은 아버지를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세정이 아저씨와 함께 교도관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방은 깔끔하게 정돈된 회의실 같은 곳이었다. 찰칵찰칵 두터운 철문을 여닫는 소리가 생판 낯선 곳을 처음 접하는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지만, 정복차림의 키 작은 교도관이 어둠침침한 긴 복도를 앞질러 갔던 가벼운 발놀림 때문이었는지 나는 다소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아버지를 면회하는 절차가 지루한 기색 없이 빠르게 이루어졌던 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세상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를 굳게 포장해 놓은 듯, 하늘 드높이 올려쳐진 하얀 벽을 열고 들어 온 그 곳에도 차림새만 다를 뿐 같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곳이라는 게 신비스럽기도 했다. 아버지를 대면하는 곳이 철창 아니면 구멍 뽕뽕 뚫린 플라스틱 장벽을 사이에 둔 칙칙하고 좁은 공간을 연상했었건만, 까닭 없는 미소를 연신 지어내며 세정이 아저씨와 나를 들였던 교도관의 친절함만큼이나 밝고 깨끗한 공간의 면회실에서 아버지를 곧 뵐 수 있다는 생각이 또한 의아하게 어리둥절했다.
소파에 앉아 아버지 뵙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낯설고도 초조했던 불편함은 이내 사라져 없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파란색 죄수복 차림의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시자 단번에 내 가슴은 얼음장같이 굳어지고 말았다.
“오느라고 수고 했다. 앉자!”
“큰 형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머리가 땅에 닿을 듯 허리를 꺾고 인사하는 세정이 아저씨의 큰 덩치를 지나쳐 아버지가 먼저 소파에 앉으셨다. 하얗게 부은 얼굴색과 다소 비대해진 육체 말고는, 변함없이 비장한 목성에 한 치도 위엄이 꺾이지 않으신 위풍당당함 그대로였다.
“문상객들, 불편 없이 잘 모셨느냐?”
“예, 큰 형님!”
“됐고! 너는 나가 있거라.”
“예 큰 형님”
재차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세정이 아저씨가 나가자 면회실 안에는 아버지와 나 단 둘만 남게 되었다. 사직동 식구들 안부보다 어머님 장례식장을 방문했던 조문객들 근황을 먼저 물으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남다름에 원치 않게 길들여졌던 자식이 실로 오랜만에 아버지를 뵙자고 찾은 곳이 다름 아닌 온 사방이 콱콱 막힌 지방의 한 교도소였다는 게 이루 형용할 수 없이 꺼림칙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외딴 곳에서의 부자지간의 대화에 나는 막중함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건 아마도 신 씨 집안 장자로서의 비장하고도 뚜렷한 막중함이었으며, 불쑥 불쑥 가슴 속으로부터 털어내고 싶었던 한 가닥의 욕망이기도 했던 것이다.
“앉아라!”
“네, 아버지!”
“군 생활은 힘들지 않느냐?”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아버지의 물음이 있기 전에 수감생활에 대한 불편함을 우선으로 여쭸어야 할 나였다. 하지만 딱히 불편 없어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도 그러했고, 무엇보다 어머님 가신 길에 관해 한 말씀도 꺼내시지 않는 아버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선뜻 결정이 되질 않았다.
“내가……. 원망스럽냐?”
그랬다. 아버지의 무딘 속내가 원망스러웠고, 고작 표현하는 그 야속함의 실체가 새삼스레 싫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 나는 대답을 대신했다. 아버지의 하얗게 부은 얼굴은 촘촘히 얽혀있던 흉터자국을 더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못 마땅하냐고 물었다. 그러냐?”
“네!”
“어떤 점이? 내가 여기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니 엄마 영전에 못 간 걸 말하는 거냐?”
“모든 게 다요.”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려보겠다고 찾아온 면회실에서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버진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키셨고 끝내는
엉엉 소리까지 내며 한없는 설움을 폭발시키셨다.
저돌적인 내 답변에 나 자신도 놀랐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향한 내 입장을 결코 지나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그 순간 나는 더 지배적이었다.
“너한테...”
다시 입을 여시기까지 아버진 한참을 침묵하셨다. 심적인 동요를 일으키고 계시다는 걸 나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한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난 아버지가 품 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셨다. 한 모금의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 아버지의 오른쪽 이마 위로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는 게 보였다. 평소 흥분을 채 삭이지 못하셨을 때나 볼 수 있었던 아버지의 땀방울이었다.
“너한테.... ”
아버지의 음성은 다시 평온해졌다.
“너한테 이해를 바라고 산적은 없다. 네가 다 자랐다고 생각했을 때도 난 그리 살아왔어. 너한테만 그랬을까!”
아버지 말씀이 예전 같지 않게 무게가 없었다. 말씀의 속도를 낮추신 데다 너무 작은 목소리를 내고 계셔서 나는 아버지 앞으로 고개를 바짝 수그렸다.
“가족들 모두한테, 내 바깥일의 이해를 구하려고 한 적은 없다. 단 한번도! 너는 그것이 원망스러웠겠지. 장남인 너니까, 이 에비가 바깥의 행동거지를 집안까지 끌고 보여준 모습을 누구보다 힘들어했을 거라는 거, 내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머님 생전에, 기분 좋게 취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연홍일 당신 무릎 위에 앉혀놓고 가족들 앞에서 딱 한번 흥에 겨운 주정을 부리셨던 아버지의 살가웠던 음성도.
난 그때 그 미더웠던 음성의 아버지가 진짜 내 아버지의 모습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간절함은 기억 저편의 세계로 곧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아버진 아버지대로 또 나는 아버지를 배제한 채의 나대로, 각기 다르게 열려진 길을 향해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라는 말씀 뒤로 아버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으셨다. 딱 한 번 그때의 살가웠던 음성과, 평소의 근엄하게 위압적이었던 음성의 중간치 목소리를 아버진 교도소에서 내게 들려주고 계셨다.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려보겠다고 찾아온 면회실에서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버진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키셨고 끝내는 엉엉 소리까지 내며 한없는 설움을 폭발시키셨다. 아버지의 아버지답지 않은 흐느낌 앞에서 나는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버지의 또 다른 그 모습이 마냥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날 아버지와의 첫 대면순간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그때 그 살가웠던 음성조차 미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가장자리에서 아버지가 벗어나는 것이 마냥 두려웠다.
나는 아버지에게 손수건을 꺼내서 내밀었다. 아버지의 등을 토닥거려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내 앞에서 나약해지는 모습의 아버지를 보게 될까 봐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그 모습이 나는 싫었다. 섣부른 위안의 말은 삼가는 게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어머님 가시는 길을…….”
쉽게 그치지 못하시는 하염없는 울음의 의미가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반드시 한 가지는 여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길을 배웅하지 못하신,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으셨어요? 꼭 알고 싶습니다.”
“태홍아! 니 엄마가…….”
아버지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눈물. 그 복받침 속에 담겨진 의미는 애끓는 몸부림의 흐느낌 그 이상이었다.
"니 엄마가, 미치게 보고 싶구나!”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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