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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생님댁 6남매 부자된 이야기)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이 가고 2025년 입니다. 독자 여러분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 드립니다.  그리고 모두 모두 건강하시고 부자되십시요. 제가 지난 해 몸 관리를 못해 고생을 했어요. 


여러분들도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새해는 어떻게요.  아니 뭘 어떻게 해요. 건강관리 잘하고   몸에 나쁜 짓 하지 않고 특히 노약자 분들은 각종 예방주사 다 맞으시고 이런게 다 여러분을 살리는 것입니다. 다들 잘 아시지요. 


우리 몸은 우리가 관리 하는 만큼만 건강해진다는 것을요. 아니 박원장 새해 벽두부터 또 사설이 많아.  앗, 죄송합니다. 본론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옛날하고 정말 40 몇년전 옛날 어느날 한의원에 내가 잘아는 조선생이 아침에 다리가 겹질렸다고 침을 맞으러 오셨습니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같이 룸메이트 하는 김선생 이라는 분한테 부축을 받고 들어 오셨다. 내가 놀라며… 아니 사실 놀라는 척을 하며, 조선생님 왜 그러세요? 어제 밤에 일하고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덤스터에 버리다(덤스터--- 무지하게 큰 쓰레기) 발을 헛디뎌 다리가 겹질렸는지 이렇게 아프다고 울상이다. 일단 치료실로 안내를 하고 찬찬히 다리를 살펴보니 발목 뒤꿈치 부분이 약간 삔 것이라 침보다는 살짝 손으로 잡아만 주어도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한의원 체면이 안 서지요. 


우선 약간의 겁을 주고 난 다음 침을 놓아 주고 상태를 보기로 했다. 박원장 지금 뭐 하는 거야? 아니 무슨 조선생, 내 부자 된 이야기는 어디 가고 어떻게 침놓는 이야기로 가냐? 아니 보채지 마세요. 다 시작하려고 지금 발동 거는 거에요. 하여간 노인네들이 참을성이 없어요.


사실 지금 침 맞으러 오신 조선생님은 나하고 저녁에 새벽 2시까지 학교 청소하는 동기이다. 엉, 정말 박원장 이게 뭔 이야기야? 당시 한의원 가지고 안되서 먹고 살기 위해서, 요샛말로 알바했지요. 그러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지요. 뭘 따지고 물어요. 눈물 나게, 내가 조선생님, 아니 정신은 어따두고 매일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다리를 삐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박원장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봐. 오늘 일을 나가야 되는데 어떡하지. 침 한방 맞으면 괜찮을까? 그럼요. 그런데 오늘 청소하는 것은 안됩니다. 학교청소는 정말 힘이 든다.  


청소하는 지역이 정말 크기 때문에 일반 빌딩 청소보다 움직이는 거리가 몇 배 된다. 내가 청소하는 사람 전부가 조선생님 청소 구역을 한군데씩 도움을 드리면 될 거에요.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그리고 반장한테 내가 이야기 할께요. 그래 그건 그렇고 요새 정신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식구들이 한국에서 곧 비자를 받아 들어 온다고 하니 심란해서, 내가 놀라며 아니 그렇게 좋은 일이면 웃어야지, 왜 정신을 놓고 다니세요. 그런데 조선생이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니까 같이 오신 김선생이 톡 나서며, 아니박원장, 조빵꾸 얘가 애들이 많아. 아니 얼마나 많기에 그러세요. 아들 5에 딸이 1명 모두 6남매야. 

내가 웃으며 우리 형제도 6남매인데 많긴 뭐가 많아요. 그런데 이 집 애들이 전부 학생들이야. 막내 딸이 국민학교 5학년인가 그렇고 그 위로 14살부터 년년생에 제일 나이 많은 아들이 작년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흥에 있는 무슨 공장에 다니고, 하여간 줄줄이 학생들이니 그걸 먹여 살릴 길이 깜깜하다는 거에요. 


그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답답한 것 같지만, 내가 웃으며 조선생님 정말 든든 하시겠어요. 아니 박원장 놀리나! 지금 애들 올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요. 아니 잠깐 박원장, 아까 이야기 하다 김선생인가 하는 사람이 조빵꾸 그러는데 그건 무슨 말이야!  네, 그거요? ㅎㅎ 조선생이 의정부 미군기지 근처에서   20년간 자동차 빵구 때우는 가게를 했다고 해서 별명이 조빵꾸랍니다. 아~ 그래서… 


그리고 세월이 금방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정말 꽃피고 새우는 3월 어느 날 오후에 우리 한의원에 하얀 포드 벤이 문 앞에 와서 서는 거예요.  

한의원 유리창이 아주 진한 썬팅을 해놓아 안에서는 밖이 보이는 데 밖에서는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지요. 운전석에 조선생이 있고 조수석에 40대중반 되어 보이는 부인이 앉아 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우리 한의원을 쳐다 보는 게 뭔가 신기한 것을 보는듯한 표정이다. 


그사이 조선생이 내려 밴 사이드 문을 열자 왠 청년들이 차에서 내리는데 정말 순간 내 직감이 정말 죄송한 표현이지만, 돈들이 우루루 쏟아지는 것으로 보이는 거에요. 내가 속으로 어, 저럴 수가.  


조빵구 선생 돈벼락 맞겠네. 여기서 잠깐, 박원장 무슨 헛소리야.  아니 미국에 처음 온 아이들을 보고 돈으로 생각 하다니, 박원장 머릿속에 돈에 환장한 뭐가 있는 거 아냐? 네, 정말 그런지도 모르지요. 하여간 83년 어떤 그날 내 머릿속에서 조선생님 댁 아이들이 전부 달러뭉치로 보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우리 한의원이 아주 조그만 했습니다.  1.000 스퀘어피트였으니 30평정도 되는 곳, 어른들 8명이 들어 오니 꽉 찬 느낌이 드는 거에요. 그날 조선생 아들들 얼굴을 보니 착하고 선하게 생긴 게 부모말도 잘 듣게 생겨, 내가 조선생이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한 명씩 소개하며 잘 부탁한다고 말하자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고, 차를 한잔씩 따라주며, 이제 미국에 왔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들 되라고 이야기를 해준 것 같았다. 


조선생 당시 큰아들 나이가 나와 12년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고 조선생하고 나하고 12살 이라 내가 속으로 웃었습니다.  조선생이 우리 한인들이 많이 사는 스프링브렌치로 이사를 와서 아이들을 전부 같은 학교 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큰아들하고 둘째 아들은 낮에 아는 분 가게에 가서 일하고 당시에 내가 학교청소 책임자한테 이야기 해서 학교 하나를 통채로 맡아서 청소하는 것을 소개 해드렸습니다.  


당시 한 학교에 저녁에 일하는 사람들이 조금 큰 학교는 8명에서 10명, 적은 학교는 5-6명 인데, 아마 학교 청소 한달 당시 6천불에서 8천불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말씀 드렸지요.  하얀 밴차 옆구리에서 돈들이 쏟아져 나온다고요. 정말입니다. 언젠가 말씀 드렸지요. 당시 3베드름 아파트 350 불이라고 말씀 드린 적 있지요.  독자여러분 4사람이 사나 8사람이 사나 한달 생활비는 비슷비슷해요. 


그리고 조선생님 사모님이 얼마나 알뜰한지 돈을 모으기 시작하더니 당시 돈의 힘은 지금의 4-5배이니 한 달에 그 식구들이 나가서 만 불 정도 번다 하면 한번에 4-5만불씩 매달 버는 거에요. 당시에 대한민국 장차관급 봉급이 3십몇만원 할 때이니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ㅎㅎ 그리 돈이 들어오면 절대로 안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조선생네가 불같이 일어나는데 불과 몇 년 안 걸렸어요.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 막내딸이 열심히 공부해서 현재 아틀란타에 치과의 병원을 하고 있고, 그의 5째 아들이 변호사가 되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 사람 그리고 나머지 형제들 중에 하윈에서 크게 성공해서 도매상을 달라스, 아틀란타에 있고, 돈을 수백 만 불을 벌었다고 합니다. 몇째 아들인지는 몰라도 아틀란타 상공회 회장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말씀 드린 것은 이분들이 한국에 있었으면 정말 이렇게 성공들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조선생네 큰아들을 지난주 휴스턴 나갔다 마켓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정말 반갑게 맞으며 인사를 하는 데 나보다 더 늙은이 같아 보였다. 아니 조선생, 어떻게 지내세요. 그런데 머리가 나보다 더 하야네. 조선생도 환갑은 지났지? 네, 그렇습니다.  이제 같이 늙어가네 .내가 웃으며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네. 그도 따라 웃으며 아버님은 고생만하시다 가셨지요. 이제 간다고 나한테 인사를 하고 벤스차를 타고 떠나는 뒷모습에  40십 몇 년 전 그들이 타고 온 하얀 벤 생각이 납니다.  마치겠습니다. 


사실 오늘 이 글을 고무줄같이 늘여서 재미난 살을 붙여서 한 5회정도 쓰려고 하다가 1회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조금 아쉽네요,, 


새해는 더 글을 써야 할지 말지  조금 생각 해보겠습니다.   만약 제 글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세요. 독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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