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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혼맥을 통해 영토와 세력을 키운 플랜테저넷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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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8>

정복왕 윌리엄의 뒤를 이을 황태자는 모두 셋으로 로버트, 윌리엄 루퍼스, 헨리이다. 장남 로버트는 아버지 살아 생전에도 왕이 되고 싶어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 프랑스로 피신하여 국왕 필립 1세의 보호를 받았으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 기회는 의외로 쉽게 다가왔다.

프랑스를 통일하려는 야망을 가진 왕들에게 노르망디는 언제고 다시 찾아야 할 프랑스 땅. 그래서 노르망디를 지키려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크고 작은 실랑이는 빈번히 발생하였다. 필립 1세 역시 이 생각을 가진 왕이었고 이 생각은 1087년에 실전으로 드러난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망트(Mantes)로 달려간 윌리엄은 도중에 낙마, 치명상을 입는다. 그래서 세 아들을 불러놓고 유언한다. 노르망디는 큰 아들 로베르에게, 잉글랜드는 둘 째인 윌리엄에게, 그리고 막내인 헨리에게는 은화 5천 마르크를 상속하고 죽는다.

얼굴이 붉기 때문에 르퍼스(Rufus)라는 별명을 가진 윌리엄은 모든 면에 탐욕스러웠다. 왕권을 빌미로 귀족들을 착취하고 형이 다스리는 노르망디도 빼앗었다. 땅을 빼앗긴 로베르는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는 완전히 용서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신께 부여받은 권한으로 그것을 분명히 약속한다….”는 교황 우르반 2세의 연설에 감동했는지 제1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다.

1100년, 윌리엄 루퍼스는 사냥 중에 날라온 화살을 맞고 숨지자 막내인 헨리 1세가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다스리게 된다. 유능한 그는 귀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두 가지 일을 실행 했다. 그 하나가 세제 개혁으로 그동안 윌리엄 루퍼스에게 착취당하던 귀족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일이었다. 루퍼스가 제정한 부당한 과세를 폐기하고 불법적인 봉건 조세는 걷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자유헌장(Charter of Liberties)>를 작성한 것.

다른 하나는 앵글로색슨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웨섹스의 후손인 스코틀랜드 공주 마틸다(Edith Mathilda)와 결혼하는 것. 이 둘 사이에서 4명의 자녀가 태어나지만 둘은 어려서 죽고 딸 마틸다와 아들 윌리엄 에설링(William Atheling)만 남는다. 공주 마틸다는 일곱살이 되는 1109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헨리 5세와 약혼, 그 당시의 풍습대로 독일에서 생활하다 결혼 적령기인 12살이 되자 신성로마제국의 황후가 된다.

1120년 황태자인 윌리엄 에설링은 노르망디에서 잉글랜드로 건너 오던 중 타고 있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되는 바람에 죽는다. 그리고 5년 후에는 사위인 하인리히 5세 마저 죽는다. 모두 다 후계자 없이. 특히 딸 마틸다의 경우엔 남편이 후계자 없이 죽자 남편 가문이 아닌 경쟁 가문의 인물이 왕이 되는 바람에 마틸다에게는 더 이상 시가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수녀원에 들어가 수녀가 되던지 아니면 친정 노르망디로 가던지. 마틸다는 후자를 택했다.

헨리 1세는 20대에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온 마틸다를 노르망디 남쪽에 위치한 앙주 공국의 후계자인 조프리를 사윗감으로 점 찍었다. 참고로 조프리의 누나는 죽은 윌리엄 에설링의 부인인데 과부가 된 후에 수녀가 되었다. 그리고 조프리는 노르망디의 마틸다보다 12살이나 어렸고.

이 결혼의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불만이 컷다. 띠동갑 나이 차이도 문제였지만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할 때 신분의 격차에서 오는 위화감이랄까. 황후였던 신부는 결혼하면 고작 백작 부인이 될 것이고 아직 10대인 신랑은 신부의 가문에 이용당하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

하지만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는 서로에게 win win. 조프리는 결혼만 하면 자신의 아들은 노르망디와 잉글랜드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 마틸다는 이 결혼을 통해 앙주와 손을 잡음으로써 언제나 노르망디를 넘보는 프랑스에 대적할 힘이 될 것이고. 그래서 이 둘은 1128년에 결혼한다. 예상대로 티걱태격했지만 아들을 셋 씩이나 둔 것을 보면 금슬은 그리 나쁘지 않았으렸다.

1135년 헨리 1세가 죽자 조프리와 마틸다는 잽싸게 노르망디와 앙주를 차지한다. 이 틈을 타 헨리 1세의 조카 스티븐은 잉글랜드를 차지하고. 그러나 이 둘은 쪼개지는 것이 아니라 협약으로 잠시 양분된다. 스티븐은 살아 생전에 잉글랜드의 왕노릇은 하지만 그의 자손에게 상속할 수는 없다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프리가 앙주 공국의 후계자였으므로 노르망디는 앙주 공국과 완전히 합처져 프랑스보다 더 큰 영토를 갖게 되었고.

1151년 조프리가 죽고 3년 후엔 스티븐이 죽자 조프리와 마틸다의 아들 헨리 2세가 등극, 잉글랜드에 플랜테저넷 왕조가 시작된다. Plantagenet은 금잔화 가지(planta genista)의 준말로 조프리가 살아 생전에 투구에 이것을 꽂고 다녔기 때문에 거기서 유래된 새 왕조에 주어진 이름이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1066년에 정복왕 윌리엄에 의해 노르망디와 합쳐져 봉건 국가로 성장 하더니 100년 후에는 공주 마틸다의 혼맥을 통해 앙주까지 포함시킨 큰 영토를 확보했다. 하지만 영토 확장은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다. 헨리 2세는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의 전처 엘레오노르 다키텐과 결혼했다. 당시 헨리 2세는 19살이고 엘레오노르 다키텐은 29살. 그러나 이 나이차이 만큼이나 큰 엘레오노르의 지참금인 아키텐이 헨리 2세에게 주어짐으로써 그는 이제 프랑스의 왕보다 더 큰 영토를 확보, 그 큰 영토에 어울리는 플랜테저넷 왕조를 잉글랜드에 연다.

1154년 헨리 2세에 의해 시작된 이 왕조는 리처드 1세, 존 등 직계 혈통을 통해 1399년까지 이어지다가 플렌테저넷 왕가에서 뻗어 나온 랭커스터 왕조 와 요크 왕조가 장미전쟁을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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