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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국제연맹이 열리는 제네바에서 펼친 나홀로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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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13>


< 서리 같은 기운에 칼날 싸늘해 / 한번 죽기는 어렵지 않지만 절개에 죽기는 어려워 / 지금 같은 세상 만나 편안하게 산다면 / 뉘라서 그를 의롭고 담대한 장부라 할까>  오래 전 한성감옥에서 지은 이 시처럼 의롭고 담대한 대장부만이 품을 수 있는 나라 향한 절개를 지키기 위해 워싱턴에서 활약하던 우남. 이제는  스위스 제네바로 향한다. 그곳에서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 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나라가 없기 때문에 정식 초청을 받지는 못 했다. 그래서 국제연맹으로 하여금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케 하여 그 회원권을 얻으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나라는 없어도 그동안 열심히 펼친 언론 플레이 덕에 그의 인맥은 화려했다.  미국 시민도 아니기 때문에 여권을 받을 수도 없지만 그의 손에는 엄연히 미 국무장관 Henry L. Stimson이 서명한 외교관 여권 #879329가  쥐어져 있었다.  그 나라 시민도 아닌데 그 나라의 공식 외교관 여권을 거머쥘 수 있는 우남. 이것이 그만이 가진 맨땅에 헤딩하는 나홀로 외교술이다.    


난생 처음 타 보는 비행기.  1932년 12월 23일 뉴욕을 떠나 런던에서 파리를 거쳐 이듬해 1월 4일에  제네바에 도착했다. 그리고 레만 호수를 끼고 있는 호텔 드 루시(Hotel de Russie)에 여장을 풀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인맥을 통해 그곳에 참석한 중국대표단을 만난다. 그들과 힘을 합해 일본의 대륙 침략을 고발하자고 제의했으나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 중국 뿐 아니라 각 나라 대표들이 일본에 대항하는 한국문제를 제기하는 것  조차 꺼려했다. 


이에 낙담하지 않고 이승만은 외교의 초점을 만주로 돌린다. 만주까지 번진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100만 한인의 자율권을 호소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꾼 것. 규탄받을 일본의 만행이란 봉천에서 만주 철도를 스스로 파괴하고 중국의 소행으로 둔갑시킨 후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앞세워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만든 사실. 이는  영국인 Lytton을 중심으로한 여섯 나라 대표들이 작성한 <리튼 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우남은 제네바에서도 그의 주특기인 언론 플레이를 잊지 않았다. 그 결과 1월 26일자 프랑스어 신문인 <제네바 저널>에는 일본의 손아귀에서 신음하는 만주한인들의 참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2월 16일에는 국제연맹의 방송을 통하여 <극동의 분쟁과 한국>이란 제목의 연설을 했고. 제네바에서 격주로 발간되던 <라 뜨리뷴 도리앙>지는 그의 사진과 인터뷰 기사를 2월 21일자 1면 머릿기사로 실었다.  23일에는 독일어 신문 <델 븐드 (Del Bund)>에도 이승만이 소개되었다. 


 이승만의 또 다른 특기는 글쓰기.   그는  3월 26일에 <만주의 한국인들: 이승만 박사의 논평과 함께 리튼보고서 발췌The Koreans in Manchuria: Extracts from the Lytton Report with Comments by Dr. Syngman Rhee>라는 35쪽짜리 소책자를 출간한다. 발췌된 리튼 보고서에 자신의 논설을 덧붙이고 일본의 만행과 한국의 참상을 알리기에 도움이 될만한 다른 문서를 첨부했다.  


<… 리튼보고서는 명백한 이유들로 해서 양 국민들 사이의 오랜 인종적 적대감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매우 현저한 일부 사건들을 누락하였다. 서양인들은 명주로 된 기모노, 국화, 벚꽃의 위장 뒤에 매우 조심스럽게 감춰진 ‘문명화된’ 일본의 추한 부분들을 너무 늦기 전에 보는 것이 좋을 터인데 그러하지 못하였다. 


한국 전 황제의 독살은 1919년 3월 독립운동의 촉발 요인으로 기억되어야만 한다. 소극적인 저항을 억압하는데 사용한 일본인의 잔인한 방법들과 일본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외부 세계에 알려진 외국인의 목격담에 기초한 학살 및 고문에 대한 수많은 증언들은 전 세계인들에게 정의에 대한 깊은 분노심을 불러 일으켰다. 부록에서 이 같은 이야기들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한때 한국 기독교도들이 “오 주여,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던 기도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적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승만은 이 책을 통하여 만주의 한국인 문제들에 대한 정당한 고려 없이 만주분쟁의 해결은 바랄 수 없다.  그래서 한국의 독립 회복만이 19세기 말 이래 지속되어 온 일본의 대륙팽창 욕구를 저지할 수 있는 보루가 된다는 사실을 국제연맹과 그 회원국 대표들에게 납득시키고자 했다.  


이 책자는 임시정부의 파리 외교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영해가 자신의 숙소에 차린 고려통신사를 통해 인쇄, 국제연맹 사무총장 에릭 드러먼드를 비롯하여 그곳에 모인 각국 외교관들과 언론인들에게 배포, 그들의 관심을 끌면서 일본의 국제 연맹 탈퇴를 재촉하는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다.  왜냐면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리튼 보고서>가 42:1로 채택되자 회의장을 퇴장했지만 정식으로 탈되를 선언하지는 않았는데 이 소책자가 배부되자 서둘러 3월27일에 국제연맹 탈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탈퇴 후 이승만은 제네바 주재 미국 총영사 Prentiss Gilbert와 국제연맹 중국 대표를 만나 일본의 대륙팽창을 막기 위한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미국과 중국과 한국이 소련과 힘을 합해 항일연대를 구축하자는 제안. 모두가 찬성하였기 때문에 모스크바로 향했지만 여장을 풀자마자 축출되었다. 당신에게 발급된 비자는 사무착오였다는 통보와 함께.  분명 일본의 입김이 작용한 것. 그래서 가칭 <4개국 항일연대>는  한국 대표가 37시간 30분 모스크바에 머문 것을 끝으로 해체된다. 우남의 나홀로 외교는 이런 쓴맛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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