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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100년 전쟁 후반기부터 싻 튼 잉글랜드의 장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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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18>

에드워드 흑태자가 왕위에 오르지도 못한 채 죽고 1년 후 에드워드 3세도 죽게 되자 리처드 2세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이 때 나이 고작 열살. 그래서 삼촌인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 John of Gaunt, 1st Duke of Lancaster 1340-1399))이 섭정을 맡으면서 잉글랜드의 역사는 장미전쟁의 그 첫 싻을 틔우게 된다. 후에 이 삼촌의 장남인 헨리 볼링브로크(Henry Bolingbroke)가 리처드 2세를 몰아내고 헨리 4세로 등극함으로써 플란테저넷 왕조는 이제 랭커스터 왕조로 바뀌기 때문이다.

지금의 벨기에의 헨트(Ghent)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곤트의 존이라 불리는 왕의 삼촌은 어린 왕을 섭정 하였기 때문에 어린 리처드는 왕족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에 의하면 존은 자신의 출생지를 빗대어 Gaunt is gaunt (gaunt는 삐쩍 말라 볼품없다는 뜻)라며 어린 조카에게 머리를 조아렸지만 실제로는 좀 껄끄러운 관계였다고. 성년이 되어1389년부터 직접 다스리게 되자 그는 잉글랜드를 떠나 카스티아로 간다. 이 때부터 또다른 삼촌인 요크 공작이 왕의 최측근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그의 아들 오멜경은 헨리4세의 눈밖에 나게 되고.

리처드 2세는 통치 후반기에 들어 강력한 경쟁 세력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하는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잘 생긴 외모를 더욱 더 돋보이기 위해 국고를 낭비하면서까지 사치했고 바닥난 국고를 채우기 위해 중과세 정책을 폈기 때문에 그의 통치 기간 내내 백성의 원성이 자자했다. 우선 그는 치나치게 멋을 부렸다. 그가 한번 차려 입으면 약 2만파운드 (약 3만불)가 소요되고 목욕을 즐겼으며 손수건을 고안해 낸 장본인이라고.

이 틈새를 이용, 곤트의 존의 아들 헨리 볼링브로크는 귀족들을 모아 반란을 모의하다 발각, 6년간의 해외 추방령이 내려진다. 그리고 아버지인 곤트의 존이 죽자 리처드 2세는 랭커스터 가문의 재산을 몰수해 버린다. 그리고 몰수한 재산으로 군비를 충당, 내정은 요크 공작에게 맡기며 아일랜드 원정에 직접 나선다. 이렇게 자리를 비운 것이 그의 최대의 실수였다.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 유배 2년 차인 헨리 볼링브로크가 브리타뉴 공작의 지원을 받고 대군을 이끌로 북부로 상륙했다. 그의 군대는 귀족들과 백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남하할수록 그 세가 불어났다. 그 기세를 몰아 리처드 2세의 측근들을 제거한 후 급하게 회군해서 돌아온 리처드2세 앞에 무릎을 꿇고 아뢴다.

자신은 왕을 해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왕에 대한 충성과 복종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음을 맹세한다. 단, 자신에게 내려진 부당한 결정, 즉 해외 추방령을 거두고 몰수당한 가문의 재산과 영지를 돌려달라. 그런 후 대답을 들을 때까지 성 주위를 돌면서 시위했다. 이미 헨리 볼링브로크에게 기운 민심을 되돌릴 수 없음을 감지한 리처드 2세는 모든 조건을 들어주고 그를 왕위 상속자로 임명하고 함께 런던으로 향했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에 의하면 <볼링브로크로 떠나 랭커스터로 돌아왔다> 개인의 유배길이었지만 돌아와서는 랭커스터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는 뜻.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모두 37편의 희곡을 집필했다. 그 중 역사극은 모두 10편. 그 중 공연도 많이하고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진 작품이 리처드 2세로부터 헨리 4세를 거쳐 헨리 5세 까지의 역사 이야기다. 리처드2세를 마지막으로 플렌테저넷 가문이 사라지고 그 뒤를 랭커스터 가문이 잇는데 그 잇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는 23년 간의 통치 중 마지막 3년 간의 이야기를 5막 6장에 걸쳐 희곡화한 작품이다. 그래서 그 핵심 내용은 헨리 4세가 왕위를 찬탈하는 것. 4막 1장에서 리처드 2세가 자리를 비웠을 때 내정을 맡았던 요크 공작이 이제는 권력을 잃은 리처드 2세의 대리인이 되어 의회에 보고한다. 리처드 2세가 왕위를 볼링브로크에게 넘겨주고 볼링브로크는 이제 헨리 4세로 등극한다고.
한편 의회의 기록에는 그가 순순히 폐위에 동의했다고 쓰여있지만 다른 연대기에는 정 반대로 기록되었다. 폐위에 동의는 커녕 심하게 격노, 헨리를 저주하고 복수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고. 하지만 강제로 폐위된 그는 폰프랫 성에 감금되어 약 4개월 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인으로는 곡기를 스스로 끊었다고도 하고 헨리가 음식을 제대로 주지 않고 굶겨 죽였다고도 전해 진다. 셰익스피어는 이를 더욱 극대화시켜 여기에 한 암살자를 등장시킨다.

하루는 헨리 4세가 독백을 한다. 나에게는 그 <살아있는 공포>를 제거해 줄만한 친구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이 말을 들은 암살자 에스튼의 피어스는 살아있는 공포가 리처드 2세임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그 일을 담당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폰프랫 성으로 들어간다. 인생이 무상함에 신세를 한탄하는 리처드2세 앞에 식사가 배달된다. 하인에게 기미를 부탁하지만 그 하인은 에스튼의 피어스경이 먼저 먹어보지말랬다고 거부한다. 독살을 직감하며 분노하고 있을 때 자객들이 나타나 그를 죽인다.
에스튼 피어스경은 보란듯이 헨리 4세 앞에 관을 내려 놓았다. 포상을 기대하면서 폐하의 가장 큰 짐, 살아있는 공포를 제가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헨리 4세는 역사에 부정적으로 기록될 자신이 두려웠다. 왕위 찬탈자, 암살범. 그래서 그 암살자를 처단하고 리처드 2세의 장례를 정중하게 치뤄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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