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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튀르키예 방문기(4) 라오디게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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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필자는 에베소 교회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에는 튀르키예 방문기를 끝맺음을 하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요한계시록 2:1절~3:23절까지의 말씀 속에는 에베소 교회를 비롯하여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등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에.서.버.두.사.빌.라)에게 편지하는 내용의 말씀들이다. 지리적으로도 보면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부터 순서대로 배열이 되어 있어서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일행은 갑바도기아 지역을 방문한 이후에 거기에서 가장 가까운 라오디게아 교회 유적지를 가장 먼저 방문을 하였다. 


풍부한 물질적 부만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하고서 영적 교만에 빠져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 유적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너무나도 처참한 모습이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형해 우리 주님은 이 교회가 기대하고 있던 것과는 달리 일곱 교회 중 유일하게 책망만을 가하신 것을 볼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믿음의 참된 문제나 성도의 도리에 대해서 너무나도 태평하고 무관심하여서 오히려 쓸모가 없는 자들이라고 지적하시면서(계 3:14-16절), 속히 진정한 신앙의 도를 회복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다(계 3:18-19절). 요한계시록 3:18-19절에 보면,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모두들 앞을 다투어서 거대한 기업화에만 여념이 없는 현대 교회의 모습을 우리가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우리는 요한계시록 3: 14-22절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신 주님의 이 서신을 통해서 오늘날의 현대 교회의 폐단과 치유책을 찾아 보아야만 할 것이다.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 동남쪽으로 약 72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맞은 편에는 히에라볼리와 골로새가 있다. 이 빌라델비아, 히에라볼리, 그리고 골로새 이 세 곳은 바울 서신에도 언급되어 있다(골 4:13,16). 라오디게아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모직 공업의 중심지였고, 또한 유명한 의학 학교가 있는 부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던 에바브라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던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도 바울의 지극한 관심 속에서 성장하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복음에 입각한 정상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부활하신 예수로부터 한 마디의 긍정적인 칭찬을 받지 못한 가장 퇴보한 교회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첫째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 교회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요한계시록 3:15-16절에 보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 표현은 라오디게아의 물 사정을 생각나게 한다. 라오디게아에서 나는 물은 맛도 없고, 몸에 해롭기로 유명하다. 여기에서 “차다”는 것은 얼음이 얼 정도로 냉기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라오디게아에서 약 14 km 정도 떵어진 골로새의 냉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불신의 세계로 완전히 돌아선 상태를 상징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 “덥다”는 말은 물이 끓을 정도로 뜨거움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라오디게아 북쪽 약 10 km 에 위치한 히에라볼리(Hierapoli)의 그 유명한 온전수를 상상하게 한다. 우리 일행이 이번 여행 때에 실제로 히에라볼리(파묵 칼레)에 방문해서 그 온천수에 다가 발을 담그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은 열도 높은 뜨거운 신앙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라오디게아의 물은 “미지근한” 물이었던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앙 역시 영적으로 미지근하였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차든지 덥든지 하라”는 명령으로 신앙의 적극성을 요구하시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둘째로, 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였으나 우리 주님은 그들에게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던 것이다(계3: 17). 우리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라는 말 속에서  라오디게아인들의 부유함과 거만함을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A.D. 60년에 그들은 대지진을 겪었으나 재건을 돕겠다고 하는  로마 정부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력으로 재건을 할 정도로 부유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 도시에 금융 자산이 대단하였음은 키케로(Cicero)가 거액의 신용장을 이곳에서 현금으로 바꾼 사실에서도 입증된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시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를 우리 주님이 꿰뚫어 보시고 이렇게 책망하셨던 것이다. 주님은 오늘의 우리 한국 교회를 향하여서도 라오디게아 교회에 책망하신 그 말씀 그대로 우리에게도 책망하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겸허하게 들어야만 할 것이다.   


세번째로, 그들을 향하여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라오디게아에는 유명한 의학교가 있었으며, 특별히 눈과 귀에 효험이 있다는 고약도 생산되었었다고 한다. 또한 치료의 신인 맨카루(Men Karou)의 신전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가 눈이 먼 상태라고 책망하시면서 그들에게 오히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서 보게 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넷째로 그들을 향하여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명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요한 계시록 3:18절에 보면,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라고 주님이 그들에게 말씀하고 있다. 라오디게아는 양털로 만든 의류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표현은 의류생산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이 도시의 사정과 정반대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은 이 지역에서 기르던 양들을 통해 얻은 털로 검정 모직 옷을 즐겨 입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영적으로 볼 때에 그들이 벌거벗었다고 책망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흰 옷”을 사서 입어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할 것을 촉구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라오디게아 교회가 처해 있던 영적인 미지근함은 사실 교회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나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갖고 잇었던 유일한 선함이란 이 교회가 스스로에게 내린 평판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평판은 사실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그들 스스로의 평판에 대헤서 우리 주님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벗거 벗은 자”라고 규정하시면서 책망하셨던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이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였건만, 실상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라오디게아 지역을 우리 일행이 실제로 둘러 보면서 무너진 건물들의 모습들을 통해서 그 건물이 원래 매우 웅장하고, 거대하고, 화려하였던 옛날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곤고하다고 책망을 받을 뿐만 아니라.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수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책망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현재의 우리 한국 교회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우리 주님이 우리 한국 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시는 이 말씀, 곧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시는 이 말씀을 귀 담아 들어야만 할 것이다. 


요한 계시록 3: 18절에서 지적하신 대로, 우리 한국 교회가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의의 흰 옷을 사서 입어 우리의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영적으로 보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우리 한국 교회는 이제부터라도 건물에 치중을 한다거나 성도들의 숫자를 채우는 일에 치중하지 말고, 또한 넓은 대지나 기도원이나 화려한 수양관 건축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영적인 내실을 풍성하게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주님이 우리 한국 교회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영적인 풍성함과 영적인 실제적인 열매들을 맺는 일에 치중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으로 미약하지마는 튀르키예 방문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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